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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 익숙해진다는 것
17-11-11관리자2,838회

  2005년 하순부터 2008년 말까지 육아휴직으로 네팔에서 거주하던 당시 네팔생활에 대해

작성했던 글들이 2013년도에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면서 모두 사라졌는데, 우연히 웹상에서

떠도는 글 하나가 눈에 띄어 옮겨본다.

  지금은 그 때와는 또다른 관점이지만 10여년 전의 내가 저런 생각으로 살았구나하고 되짚어

보면, 현재의 나의 생활을 반성,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익숙해진다는 것 

 

 

 

최은주(네팔 거주)

 

나는 요즘 네팔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쉽게 얘기하면 예전에는 참아야 하는 것들이 이제는 익숙해진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처음에 네팔집에 와서 보니 창문에 쇠창살같은 것이 가로로 붙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방범창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감옥같았다. 그래서 남편더러 감옥같다고 했더니 남편은 너무 실망하는 것이었다. 자기딴에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집인데 내가 그렇게 표현하니 어찌 황당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제는 그 쇠창살이 내아들을 지켜줄 수 있는 방어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길을 가면서 유심히 다른집의 창문을 보니 대부분 똑같은 모양인 것이다. 매일 보니까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우리 집에는 사람들이 늘 많다. 어떤 사람들이냐 면 가족과 친척들, 시골에서 올라온 이웃, 형님친구들, 남편친구들, 그리고 회사직원 등등. 날마다 수시로 사람들이 바뀌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네팔의 대가족제도를 겪어보면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 TV에서 대가족이 모여 사는 일상을 담았던 일일연속극이 생각날 때가 많다.

TV드라마이니까 늘 사건을 많이 만들었겠지만 사실 대가족이 모여 살면 매일매일 사건이 많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들이 매일 사고(?)를 쳤었는데 그것과도 비교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나의 프라이버시가 없다고 어렵다며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남편은 나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2층에 사람들이 출입하는 것을 자제시켰다. 그런데 4개월여가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사람들이 없으면 너무 허전하고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아들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해서 나와 둘이서 2시간만 있으면 너무 심심해 하고 사촌들이 오면 폴짝폴짝 뛰면서 소리지르며 좋아하는 것이다.

 

근동에 살고 있는 셋째 누나네는 남편이 벨기에에 일하러 가고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우리 집에 오는데 처음에는 불편하더니 이제는 집에 가려고 하면 왜 가냐며 더 있다 가라고 내가 붙잡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집안일도 많이 도와주고 아이들이 나의 아들과 잘 놀아주기 때문이다. ^^ 그리고 누나가 재미있다. 나는 셋째 누나네와도 익숙해진 것이다.

 

매일매일 사람들이 오다 보니 밥도 많이 해야 한다. 어머니는 가족들 먹이는 것은 좋아하시지만 사실 남들이 와서 우리 집 쌀을 많이 축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신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으신다. 네팔사람들은 밥을 엄청 먹는다.

 

보통 성인남자의 경우 한국에서 사용하는 밥공기로 따지면 네 공기는 먹는 것 같다. 아이들도 그에 못지 않게 먹는다. 그런데 반찬은 없어도 밥만 많이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의 궁핍했던 시대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다른 반찬거리보다도 쌀이 먼저 떨어져서 한 달에 한 가마니(80kg)이상 먹는다.

 

나와 어머니, 남편, 아들 네식구가 사는 집에 한 달에 한 가마니라니... 그렇게 밥을 많이 먹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손님 밥을 풀 때 엄청 많이 담아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익숙해졌다.

 

손자에게 달밧을 손으로 먹이시는 어머니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도, 매일 일찍 들어온다고 하고서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오는 남편이 이상하지 않은 것도, 하루에 한가지 일도 처리하기 힘든 네팔이 이제는 익숙해진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과 익숙해졌다는 느낌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한국에서 온 다른 분들이 보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네팔에 와서 한국식당에 갔는데 우리부부처럼 한국인아내와 네팔인 남편이 식사를 하는데 여자는 새까맣게 타서 촌스러운 모습으로 식사를 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민망했던 느낌을 가졌었다.

 

왜였을까? 두고두고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내가 다른 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쳐지지 않을까? 며칠 전 네팔미장원에서 파마를 했더니 촌닭을 만들어놓았다. 바글바글 파마한 내 머리를 볼 때마다 나는 예전에 식당에서 보았던 그 여자를 생각하며 피식 혼자 웃는다. 나는 익숙해진 것이다.

 

 출처 ; 비전통신

 

  복직하여 6년 근무하고 다시 육아, 동반휴직으로 3년째 네팔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벌써 10여년이 훌쩍 흘러 아이들도 많이 크고 남편가족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셋째 시누이네 가족들 모두 벨기에에서 일하며 살고있고, 우리 아이들이 자란 만큼 사촌들도

모두 장성하여 대학생이 되어 각자 바쁘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손님맞이하느라 바쁘시지만

좋아하시고, 변한 것이라면 가족간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며느리에 익숙해지셔서 많이

배려하시고, 나는 사람만남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서로 익숙해진 것이다.

  어떤 면에선 익숙해진다는 것은 함께 하는 시간만큼 정이 쌓인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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