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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푼힐 트레킹 4일차
04-10-01이근우2,628회


2월 4일 수요일

숙소의 새벽은 고요했다.
lodge라는 곳이 난방은 전혀 되지 않으며 나무 판자로 칸막이를 하고 그저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정도였으며 침대 2개, 혹은 3개만 뎅그러니 놓여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서 대원 1 의 소개로 마련한 침낭의 보온 효과가 대단해서 잠들기 전까지만 다소 추위를 느꼈을 뿐 아주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부지런한 대원 2 덕택에 5시 30분에 눈을 떴다. 전날도 일찍부터 서둘렀고 몇 시간 산행을 한 탓에 일행 모두는 다리가 다소 묵지근했지만 코끝이 싸한 찬 공기를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벽별이 선명히 보일만큼 하늘이 맑아 ANNAPURNA의 풍광을 한껏 감상할 기대에 부풀었다.
감자, 수프, 스크램블드 에그 등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난 시각이 7시 40분.
가벼운 콧노래도 부르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길을 나섰다.

그러나 길은 그리 반갑지 않은 돌계단의 연속이었다.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한 몸에 받으며 급경사를 오르던 대원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고, 사진 촬영 역할을 분담한 대원 2.3은 멋진 풍경과 대원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느라 손놀림이 빨라졌다.

꽉채운 두시간을 걸어 9시 40분 애초에 첫 번째 숙소로 하기로 했던 Ulleri에 도착했다. 해발 1950m. 한라산의 높이다. 이제부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땔낭구산악회의 등산 높이를 경신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 좋아 그저 산에 오르는 이들에겐 그 높이가 무슨 의미랴 싶으면서도 일상에서 이미 많은 것을 수치화, 계량화하는데 익숙해진 구태를 벗어 던지지 못함은 부끄럽게도 어쩔 수가 없었다.

뒤쳐진 대원들을 가다리며 잠시 쉬고 있는 대원2, 3이 사진 촬영을 하자며 포즈를 취하란다. 안나푸르나 3봉(7555m)과 히운출리(6441m)의 설봉이 구름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저마다 그럴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은 뒤 점심식사전의 중간휴게소로 정한 Banthanti의 Machhapuchhre(마차푸차레-Fish tail이라는 뜻의 네팔어명) Guest house(해발 2400m)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밀크커피와 생강차를 마시며 지나쳐 온 마을과 길을 잠시 되돌아 본다.

네팔은 전국토의 16%만 경작이 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산악지형이 많다고 하는데 이곳에 비하면 호남평야는 대평원이다. 급경사의 산비탈도 개간해서 밭의 층계를 이뤘다. 누군가 그것을 "산주름"이라 하던가? 첫날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비탈의 밭과 산마루에까지 지어놓은 집에서 얻은 첫인상은 삶의 궁색함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윤택함만이 삶의 여유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닐진대, 어제 오후, 그리고 오늘 오전 동안 걸으며 지나친 수많은 네팔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특히 밝은 태양빛을 받아 눈동자가 더욱 초롱초롱한 어린아이들에게 준비해간 학용품이나 먹던 간식 등을 손에 집히는 대로 주니 그렇게 기뻐할 수 없다. 작은 것으로부터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좋아라 하고 받아들며 신기한 듯 요리조리 돌려 보곤 했지만 더러는 수줍어하며 뒷걸음질치는 아이도 있기도 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다 마찬가지로 귀엽기 마련이다. 오전 10 경에야 학교에 가는 아이들 - 교육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여섯 살, 여덟 살 혹은 열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부모 맘대로라고 가이드가 얘기해 준다) 등 취학연령조차 엉망인 곳에서 무엇을 배우겠냐마는 - 그래도 학교에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2000m 이상의 고지대라 기상의 변화가 무쌍하고 공기가 냉냉하여 땀이 어느새 식어 몸이 오싹하다. 다시 기운을 차려 한시간 가량 걸어 Nangethanti Green View Guest House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점심식사의 분위기는 약간은 가라앉았다. 왜냐면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행 중 대원 4 가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며 걸음걸이의 속도를 늦췄다. 어젯밤만 해도 저녁식사후 네팔인들과 기분좋게 어울려 한바탕 잘 놀았던 터라 아침식사 후에 너무 빨리 걸어 몸에 무리가 온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고산증세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 고산증이라는 것이 평소의 건강상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두통이 생기고 무기력증에 빠진다는데 실제로 높은 곳에 올라봐야 본인에게 적응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기이한 증세다.

의료를 담당한 대원 5 와 마사지를 능숙하게 한다는 48세의 포터가 수지침과 지압, 맛사지 등으로 찌르고 누르며 비틀기를 여러 차례, 게다가 소화제 진통제 등 복합처방까지, 알고 있는 민간요법, 의학상식을 총동원해서 치료한 결과 다소 차도가 있었으나 아직 예정한 숙소까진 여섯시간이나 남은 긴 거리였다. 대원들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14시 50분.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숲으로 오롯이 난 호젓한 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기온은 더욱 내려갔다.

앞서간 일행은 16시 40분 숙소인 Ghorepani(해발 2870m)에 도착해서 미리 여장을 풀었고 우리 트레킹 팀의 대장인 대원 6과 포터 한 명이 대원 4를 그림자처럼 가까이서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 17시가 훨씬 넘어 도착했다. 점심 때보다 상태는 더욱 악화된 듯했다. 트레킹코스안내, 팀원들의 건강, 포터관리, 시간 조절등 전반적인 것을 총괄하는 guide의 움직임이 기민해졌고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 일행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걱정스런 마음에 이렇게 하자, 아니 저렇게 하는 것이 더 낫겠다. 또 이건 어떠냐, 내 생각은 이렇다 등등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기에 분분했다.

보다 못한 팀장의 일갈! 모두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경과상태를 보고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할 것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아라. 그리고 대원 5는 환자의 잠자리를 마련해 놓고 대원 7은 죽을 준비좀 해 줘라!!" - 비장한 말투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대원 8의 기상천외한 대꾸- "아니 내 집사람이 뭘 잘못 했길래 죽을 준비(ready to die)하라고 협박을 합니까?"
졸지에 음식(죽) 준비가 죽을 준비로 바뀐 것이다.

아주 어색해졌을 지도 모를 분위기가 그 한마디의 죠크로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흔히들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이성을 흐리지 않게 한다던데 바로 이런게 유머로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에서야 얘기지만 대원 8이 걸쭉한 농담에서 하이 코메디까지 사설 엮듯 풀어 놓아 일행은 여행기간 내내 종종 배꼽을 쥐고 웃어야만 했다.

어쨌든 비상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대개 lodge는 밤 10시가 지나면 난로를 끄고 모두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그러나 환자를 온기없는 숙소에서 재울 수는 없었기에 주인과 협상을 해서 밤새 난로의 장작불을 지피고 난로 옆에 침대를 놓고 재우기로 했다. 그리곤 팀장은 밤새 불침번을 섰다. 아마 밤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으리라. 애꿎은 담배만 줄창 피워대고.......
일행은 대원4의 건강이 염려되어 다들 쉽게 잠을 이룰 수 가 없었다.

무심한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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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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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조랑말을 타세요_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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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포니 무리를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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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를 추월하는 우리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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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설봉 - 히운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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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운추리를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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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빠니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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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빠니의 Green View Lo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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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지의 화롯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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