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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푼힐 트레킹 5일차
04-10-01이근우2,795회


2월 5일

오늘은 전체 일정의 반을 넘기는 날.
삶에 있어서 어떤 일이든지 절반을 넘기게 되면 남은 절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난롯불을 지피던 팀장(대원 6)의 초췌한 모습이 안쓰럽다. 일정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그저 단순히 역할 분담을 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의 침착하고도 의연한 자세와 진지한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무릇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그와 같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축복이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팀장의 극진한 보호와 나머지 대원들의 간절한 기원에 ANNAPURNA(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의 영혼이 감동했는지 대원 4의 상태는 더 이상 악화되진 않았다. 미음과 죽으로 간신히 허기를 메우며 가까스로 기운을 조금 차린 대원 4는 말로 표현만 하지 않았지 본인으로 인해 대원들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일정이 취소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이었다. 그랬다. 눈빛만으로도, 표정만으로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친자매, 친형제, 친남매 못지 않은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대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그리고 그의 몫까지 충분히 즐기고 감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눠 주마하는 마음들이었다.

아침 5시 40분. 우리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Poon Hill 전망대에서의 일출을 보고자 어둠을 가르고 오르기 시작했다. 한시간 가량 올랐을까 안나푸르나 남봉을 비롯해 웅장한 봉우리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났다.

구름도 지쳐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발 아래 저만큼 호수면처럼 잔잔히 깔려 있는 해발 3210m!
7시. 지구 건너편에서 온 태양이 안나푸르나의 정상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저 아! 하는 감탄사외의 그 어떤 말로 벅찬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황홀경에 넋이 나간다는 것이 꼭 이런 순간이리라.

대원 2. 3은 언 손을 녹여 가며 그 장쾌한 모습들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했고, 좀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순간을 사진에 남기고자 나머지 대원들은 다양한 포즈의 모델이 되기에 바빴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다시 lodge에 내려온 시각이 8시 50분.

서둘러 아침 식사를 끝내고 10시에 Green View Guest House를 뒤로 하고 길을 나섰다. 대원 4는 포터에게 부축을 받아 천천히 걷다가 험한 길에선 업히기도 하며 일행의 후미에 서기로 했다.
여행사 사장의 말을 빌면 포터의 역할은 말그대로 주어진 짐을 목적지까지 아무 탈없이 운반해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 48세의 걸데 세르파(우린 갈대 형, 갈대 오빠라는 애칭으로 불렀다)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우리 일행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눈물겨운 감동 그 자체였다.

본격적인 눈길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그 높은 곳의 나무들마다 초록의 잎을 그대로 간직하고는 것이다. 한겨울에도 이처럼 성장한 모습들이니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어떨까 상상이 안된다.

두 시간 쯤 올랐을까 새벽에 올랐던 푼힐 전망대와 거의 같은 높이인 다른 봉우리에 서니 구름 속에서 언뜻언뜻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제1봉. DHAULAGILI(산스크리스트어로 하얀 산을 뜻함) 등의 준봉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부축을 받으며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마치 사투와 같던 대원 4의 의지는 놀라웠다. 일행들과의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하리라는 굳은 결의에 우리 모두는 찬사와 격려를 보낸다.

Deurali Guest House(2990m)에 도착한 것이 13시 40분.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여유만만한 대원 9의 유창한 영어실력(첫날 상해에서 그의 눈부신 활약으로 네팔항공사로부터 저녁식사비 일부를 보조받은 바 있다) 덕택에 식당에서 만난 외국인 의사로부터 도움말을 들었으나 아무런 의료장비도 없는 심심산골에서는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대원 4의 기력이 차츰 회복되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15시 10분 다시 길을 나서는데 오후에 걸을 길이 눈이 얼어붙어 있고 경사가 급해 가장 위험한 코스라는 Guide의 말에 일행은 자못 긴장했다. 아이젠이 퍼뜩 떠올랐으나 아뿔싸! 여행사 사장의 말을 듣고 모두 카트만두에 두고 온 것이었다. 주변의 설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엉금엉금 기면서 때로는 엉덩방아도 찧고 조심스레 하산하기 시작했다. 지난 가을 발가락을 다쳤던 대원 10이 유난히 고생했다. 눈속에 피어 있는 꽃을 좀더 가까이서 촬영하려 했던 대원 2는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위험한 일도 있었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적절한 경구이리라. 구름에 가리고 안개에 파묻혀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보이는 상황에선 지레 겁을 먹고 다리가 후들거릴 절벽과 낭떠러지의 길이었던 것이었다.

포터들의 배려에 다시 한 번 감동한 것 한 가지.
그 무거운 짐들을 지고서도 거침없이 걸어 내려와 짐을 휴게소에 내려 놓고 다시 올라와 얼어붙은 눈길에 우리가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발디딜 곳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Tadapani(2590m)의 숙소까진 아직 멀었고, 걸음은 더디고..... 사위엔 어둠이 스물스물 기어나와 이젠 급기야 랜턴을 키고 걸어야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싸락눈까지 내렸으니..... 옛날 객지에서의 해질녘 나그네 신세 아닌가. 시간은 겨우 18시가 넘었을 뿐인데 말그대로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흙같은 어둠이었다. 뒤쳐진 일행은 손전등을 들고 마중 나온 포터를 보고서야 비로소 다 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Grand View Guest House lodge에서의 마지막 밤.
미리 주문한 닭백숙(6kg의 닭 한 마리로 Guide와 포터 7명그리고 우리 대원 11명이 포식을 했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과 Khukri(술의 네팔어. 담배도 Khukri가 있어 팀장이 애용했다) 몇 병을 들며 포터들에게 진정어린 고마움을 전했다.

*** 너무 힘들거나 혹은 기분이 너무 좋을 경우 사람은 종종 말을 잊는다. 내가 지금 그 심정이 다. 이곳에서 받은 베품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디에선가 갚으려는 마음을 간직하겠다.

*** 속상하고 화날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본 순수한 미소를 생각하면 곧 풀어질 것이다.

*** 그대들의 마음씀씀이와 선한 눈빛 내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예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달았으며 마치 내 마음의 스승을 얻어 가는 것 같다.

***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목도했고 감동했다.

*** 머지않아 가족과 함께 와서 이런 경험을 다시 한 번 하려 한다.

*** 행여 다시 오더라도 그대들과 트레킹을 다시 하고 싶다.

*** 우린 모두 전생의 깊은 인연이다. 그래서 다시 올 수 있다. 아니 올 것이다.

*** 가난하지만 더욱 행복해 보인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행복의 모두는 아니라는 것을 재삼 확인했다.

그리고 갈대오빠의 답사..
<참으로 다양한 팀과 함께 트레킹을 수없이 해봤지만 이처럼 한 목걸이에 엮어 있는 구슬같은 유대감을 보인 팀은 없었다. 특히 자고 나서도 대원 4의 건강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아 눈물이 났다. 아직도 걱정이 된다. 본인에게도 따뜻하게 대해 주어 고맙다.>

한 목걸이에 엮어 있는 구슬같은 유대감!
제1고 땔낭구 산악회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얼마나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인가?
순수하고 맑디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면 그같은 비유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헌신적인 보살핌에 감동했고 또 그의 말에 다시 탄복했다.

식사를 끝내고 이어진 여흥.

레썸 피리리∼ 레썸 피리리∼ 우댈 자우끼 단다마 버숨 레썸 피리리‥‥‥‥

네팔민요 "레썸 피리리" 는 애잔하고 단순한 리듬으로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바람 불 때 산꼭대기에 올라 손수건을 흔들며 바람에 손수건이 날리듯 자신의 마음을 바람에 실어 멀리 있는 연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이란다.

우리의 토속 정서와 유사하다.노동이 끝나고 여럿이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며 피로와 걱정과 고통을 노래에 실어 날려 보내고, 다음날을 기약하는 이 사람들. 가식과 위선이란 말조차도 모르고 사는, 마치 안나푸르나의 만년설같은 이들의 순백의 마음씨가 속된 자본주의 근성을 가진 외국인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일까?

우리 일행은 술에 취하고 정에 취해 구름 속 lodge의 밤의 적막함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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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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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일출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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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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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파노라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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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파노라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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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힐 파노라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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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海 위의 高峰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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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와 고봉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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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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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 아담한 로루렌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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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View Guest House lodge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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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View Guest House lodge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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