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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순박하고 헌신적인 포터들
04-09-06박종근2,625회

2003년 1월 5일, 순박하고 헌신적인 포터들

 

여행사직원들과 함께


어제 트레킹이 끝난 후 묵티나뜨 방향으로 갔다 온 것이 무리였는지 코를 골며 잤다. 새벽 5시에 깨어 뒤척이다가 6시에 일어났다.
 종콜라 계곡을 따라 비탈진 산 허리에 살짝 걸린 길을 따라 걸었다. 일행 중 4명은 하루 만원에 마부가 딸린 말을 타고 가기로 했다. 묵티나뜨로 가는 길은 3단계 경사진 길을 차례로 오르는 길이었다. 한 단계를 오를 때마다 평원이 펼쳐지고, 건너편 산과 뒤쪽의 다울라기리 봉우리의 장관이 웅장하게 보이는 길이었다. 킹가르가 보이면서 멀리 묵띠나트 쪽의 설봉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멋이 있었다. 킹가르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당에 내리는 햇볕은 강렬하면서 따뜻했다. 우리 짐을 지고온 포터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우선 우리에게 차를 대접하고, 스프를 주고, 본 식사를 주고, 후식을 주는 헌신적인 봉사를 하였다. 그후에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자신들의 초라한 식사를 담벼락에 앉아 먹거나 부엌 한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곤 하였다. 우리를 먼저 대접하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 깊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고팔, 라케스와 함께


 
자르코트를 지나 묵띠나트 마을로 들어서는 경사진 길은 힘들었다. 묵띠나트에는 오후 3시 40분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과 꼬마들은 카드 게임에 빠져 있었고 묵티나트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또한 묵티나트는 네팔 힌두교의 2대 성지로서 사원이 많았다. 묵티나트 곰파를 들려 구경을 하였다. 사원을 나오는 길에 한 노파가 돈을 구걸해서 10루피를 주었다.
 3800고지인 숙소에서 고산증 증세인지 계속 머리가 아파 일행이 가져온 사혈 침으로 열 손가락 끝에서 피를 빼니 신기하게도 머리 아픈 것이 나았다. 고산증 치료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손가락 끝에서 피를 빼는 바로 효과가 있었다. 숙소 아이들과 불을 쬐면서 아이들에게 볼펜 3개를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내일 소롱라 계획을 일행들과 논의하였다. 대체적인 의견이 고소 적응이 안된 3800고지에서 하루에 1600M를 더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나 역시 소롱라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고 그것이 이번 트레킹의 목적 중에 하나였지만 일단 힘들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주먹만큼한 별이 보이는 숙소 옥상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김소정 선생님의 별자리 강의가 있었다. 

 

2003년 1월 6일 내가 가장 높이 오른 곳, 소롱라(5416M)


 묵티나뜨에서 소롱라까지는 25KM 내외, 오르막 경사가 심한,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길이다. 더구나 고소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1600M를 한꺼번에 올려야 한다. 이론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행들과 쏘롱라에 도전하면서


 아침 식사 후 점심은 각자 챙겼다. 8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해서 묵티나뜨 사원을 참배하였다. 이마에 점을 찍는 의식을 행한 후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가이드 고팔이 앞장을 서고 내가 바로 뒤에 붙었다. 첫 번째 급경사 직전에서 휴식을 취했다. 일행은 각자의 몸 상태와 페이스에 따라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맨 앞에서 고팔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경사는 심했지만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왼쪽으로는 야카와캉봉(6482M)이 오른쪽으로는 카퉁캉봉(6484M)봉이 버티고 서있는 경사길을 계속 올라야 하는 코스였다. 11시 20분에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고산증인지 머리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산세에 변화가 없는 길의 오르막은 지루하면서도 힘들었다. 휴식 시간의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했고 고산증세가 본격적으로 느껴졌다.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체력 유지를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내 몫을 다 먹었다.
 4800M를 지나면서 고산증은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머리가 아프고 메스껍고 졸렸다. 몇 십보를 걷다가 몇 분을 쉬는 산행이 계속 되었다. 이제 고팔과 요리사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앞서 갔다. 가도가도 경사진 언덕이 보란 듯이 새롭게  놓여있는 길이 계속 되었다. 내려올 때 랜턴을 켜고 내려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지막 긴 경사길을 남겨놓고 오기가 생겼다. '그래 가보자. 일단 붙어보자. 내리막 길은 내가 빠르게 내려올 자신이 있으니까 늦더라도 끝까지 올라가자'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고팔이 걱정이 됐는지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문제 없다고 외치며 다시 올랐다
.

 

드디어 쏘롱라에!


 드디어 오후 3시에 소롱라에 올랐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대피소에서 잠깐 쉬고 사진을 찍고 주변 경관을  본 후 서둘러 하산을 했다.
 하산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고도를 낮추면 고산증세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메스껍고 졸린 것은 가셨지만 머리 아픈 것은 여전하였다. 성큼성큼 걸을 때마다 머리가 울려 상당히 고통스러운 길이 계속 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고팔과 요리사에게 나는 천천히 갈테니  먼저 가라고 했지만 그들은 나를 지키려는 듯 나를 가운데 두고 같이 하산을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6시, 오르는데 6시간 반 내려오는데 3시간 걸린 힘든 산행이었다. 소롱라까지는 이번 팀에서 나만 갔다 온 것이었다. 머리 아픈 것이 여전해 사혈침으로 모든 손가락 끝에서 피를 뺀 후 저녁 식사 전까지 침낭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는 이건창 사장님이 산 닭으로 닭찜이 나왔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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